개벽청년

 
작성일 : 09-09-04 12:03
천도교 "일부 교인들 친일행적 통렬히 참회"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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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친일파 명단 발표에 맞춰 참회의식


▲ 29일 오전 천도교의 과거 친일행적을 통렬하게 참회하고, 민족의 용서와 질정을 구하는 내용의 참회문을 발표한 박남수 천도교 종의원 의장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반민특위 법정에서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형해 매국의 교훈으로 삼아달라'며 민족 앞에 고백하고 속죄의 눈물을 흘렸던 최린의 심정이 오늘 천도교인의 심정이다."

동학정신에 뿌리를 둔 천도교가 과거 친일행적을 통렬하게 참회하고, 민족의 용서와 질정을 구했다. 천도교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에 맞춰 일제시대 말기 교단과 일부 교인의 친일행위에 대해 이같이 사죄했다.

박남수 천도교 종의원 의장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 참회문을 발표했다. 참회문은 (사)동학민족통일, 천도교 여성회본부, 천도교 청년회 중앙본부 명의로 작성됐다.

박 의장은 먼저 "일제 말기 최린, 이종린 등 일부 천도교인들은 일제 민족정기 말살정책과 침략정책에 동원되고, 나아가 협력하며 민족사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친일행위를 시인했다.

박 의장은 "일제 말기 교단의 일부 지도자들이 저지른 친일행적은 비롯 강압에 기인한다 하더라도 보국안민을 이념으로 하는 교단의 본질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순도 순국선열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의장이 참회문을 통해 밝힌 천도교단과 일부 교인의 친일행적은 ▲친일단체를 결성하고 일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과오 ▲일제 침략전쟁에 물자를 동원하고 민족의 젊은 동량을 전쟁터로 보내는데 앞장선 과오 ▲천도교 기관지를 동원해 일제 정책을 선전하고 정당화한 과오 등이다.

박 의장은 "지난 과오를 용서받고 천도교 민족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재삼재사 노력하려 한다"면서 "참회는 오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천도교 민족운동의 전통도 역사에 기록하여 다시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정기와 본연의 이념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최린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기고한 '학병권유 등 친일성향 사설(왼쪽)과 1949년 반민특위로 압송돼 가는 모습(뒷편). 앞의 흰 두루마기 차림은 경성방직 사장을 지낸 김연수씨.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최린 전 도령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에 참여했다가 변절, 창씨개명을 하고 천도교를 분열시킨 장본인이다. 이후 중추원 칙임참의(1934)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사장(1937),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1940) 및 조선임전보국단 회장(1941) 등을 지내 '친일가도'를 달렸다.

1945년에는 친일언론단체인 조선언론보국회를 창립, 회장을 맡았고 해방 뒤 반민특위에 체포됐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 최린은 1949년 반민특위 법정에서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형해 매국의 교훈으로 삼아달라"고 뒤늦은 속죄의 눈물을 흘렸다.

이종린 역시 창씨개명을 하고 1939년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천도교연맹 이사장과 흥아보국단 경기도 위원을 맡아 일제 침략전쟁 협력에 앞장섰고 1941년 국민총력연맹 평의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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